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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0 (02:23:35)
뚝-
수화기를 내려놓은 자리에는 낙서가 잔뜩이다.
‘사무실'
‘화분'
‘로즈마리'
그의 통화 내용인듯한 단어들이 신문 위에 적혀있다. ‘화분'은 글자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동그라미가 마구 쳐져 있고, 그 옆에는 알 수 없는 도형들이 순서 없이, 하지만 나름 규칙적으로 늘어져있다. 한 획으로 대충 이어 그린 토끼는 어쩐지 수염만 정갈하다. 검은색 잉크가 모양을 가지고 흐른 이 자국들은 별 의미 없이 분주하기만 하다. 그가 전화를 끊은 자리는 요즘 나의 생활과 닮았다. 귀로 들리는 수많은 정보를 머릿속 이곳 저곳에 주워 담으려고 눈알을 굴린다. 펜이 눈알 구르는 속도를 못 쫓아 이리저리 꿀럭이다 잉크만 낭비한다. 아, 잉크 덩어리가 손에 지저분하게 묻었다. 지우려고 슥 문지르는데 힘을 준 만큼 뭉개져 더 지저분해졌다. 언제 씻지. 생각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뒹군다.
잠시 짬을 내 미술관에 왔다. 어제 못 잔 것을 생각하니 잠이나 잘 걸 하는 짧은 후회도 들지만 이미 매표소 앞이다.
‘찌익-'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안내와 함께 티켓을 잘라가는 건조한 손등을 잠깐 쳐다보다 안으로 들어갔다.
'...'
다들 신중하게 무언가를 느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그 틈에 섞여 있자니 그림 앞에서 몇 초를 버텨야 할지 같은 우스운 생각이 스쳐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깊게, 뭉근히 눌러 그은 덕에 붓 자국이 숨었다. 무엇으로 그렸는지 보이지 않아 무엇을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두 번째다. 이 그림, 그 사람과 함께 본적이 있다. 한참을 무제 앞에 서있는 그의 동그란 뒤통수를 그림 보는 체하며 훔쳐 봤었다. 누구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발걸음을 먼저 떼는 것은 꼭 지는 느낌이었다. 각자 캔버스 안에 빼곡히 담겨진 저것들에 바쁘게 각주를 달았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연필을 들어 정답만 동그라미 치는 수험생처럼.
다시, 무제.
오늘 보니 그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나도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다.
보여지지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마크 로스코가 자리를 비켜준다.

쭈우욱-
기지개를 켰다. 이제야 좀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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