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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19 (19:21:35)
[ 카피라이터 / 광고회사의 '꽃' ]


요즘 박찬호 야구가 인기입니다. 그래서 LA 다저스 팀을 꼭 우리나라 팀처럼 응원하게 됩니다. 갑자기 제가 왜 이런 야구 얘기를 하냐 하면 저는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그 시합에서 투수가 꼭 AE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AE와 비교되는 건 투수말고도 또 많습니다. 배의 선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는 사람도 있고, 중국집 철가방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AE의 놓인 처지가 투수와 가장 가깝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AE가 광고의 전반적인 것을 집행하듯이 투수도 시합의 전반적인것을 이끌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투수가 승리투수냐, 패전투수냐 되는 게 자기의 잘잘못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자기 팀이 어떻게 잘 싸워주느냐에 달려 있듯이 AE도 그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공을 잘 던져도 자기 팀 외야수가 훌라이 볼을 실수로 놓치고 타자들이 시원치 않게 때려주면 그는 패전투수가 됩니다.

반면에 그날 컨디션이 나빠 공을 잘 못던져도 자기네 수비진이 어려운 걸 잘 막아내고 공격진 타격에 불이 붙는다면 그는 승리투수가 됩니다. AE도 아무리 기획서를 잘 쓰고 광고주를 잘 삶아 놓았다고 해도 제작에서 크리에이티브가 시원치않으면 그는 광고주에게서 무능력한 AE가 됩니다.

반면에 기획서는 좀 떨어지더라도 제작에서 크리에이티브가 뛰어난, 즉 팔리는 힘이 쎈 광고를 만들어 물건이 잘팔리는 날이면 그는 광고주에게서 대접받는 AE가 됩니다. 이처럼 AE는 그 잘되고 못되고의 운명이 자기 자신의 기량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투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네 팀이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AE에게 그렇게 중요한 자기네 제작팀의 중심에 바로 카피라이터가 있습니다.

AE를 광고회사의 꽃이라고 하는 데 그건 AE를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좀 과장된 얘기인 듯 싶습니다. 사실상 AE는 예쁜 꽃이라기 보다는 거친 잡초입니다. 오죽하면 AE는 잡놈 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했겠습니까. 진짜로 광고회사의 꽃은 카피라이터입니다. 카피라이터가 꽃이라면 그 꽃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의 꽃"이 있는가 하면 "꽃다운 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의 꽃"이란 꽃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겁니다.

사실 톡 까놓고 얘기하는 데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처럼 편하기 쉬운 직종도 없습니다. AE는 자기 광고주에 대한 모든 책임을 골머리에 지고 다닙니다. 제작의 디자이너도 CM의 PD도 자기가 만든 제작물 퀄리티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카피라이터는 그렇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습니다.

AE처럼 광고주가 부도날까봐 걱정 안해도 되고, 디자이너처럼 신문광고가 난 다음날 아침 중요한 글자가 틀렸거나 떡칠이 되어 나와도 그런 거는 자기가 책임질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같이 일한 AE와 디자이너가 그런 일을 당했을 경우엔 같은 팀으로서 한숨만 쉬어주면 됩니다. 그러나 AE와 디자이너는 감봉을 당합니다. 때로는 회사를 그만 둘 일도 생깁니다.

광고일을 할 때도 AE가 따끈따끈하게 써온 광고기획 방향이나 광고전략의 브리프를 보고 그것대로 써주면 됩니다. 만일 그게 자기 맘에 안들면 AE에게 잔소리할 수도 있습니다. 진짜 대단한 카피를 쓸 것처럼 말도 잘 수 있습니다. 그렇게 궁짝궁짝해서 제작에다가 카피를 넘겨주면 자기가 할 일은 원천적으로 끝입니다.

어떨때는 아이디어가 다 끝나는 걸 그냥 같이 일하는 척 구경하고 있다가 맨 나중에 그 아이디어에 맞게 몇자 정리해주면 될 때도 있습니다. 마치 자기가 화룡점정(畵龍點睛)하는 대단한 전문가라도 되듯이... 이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의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능숙하지도 못한 컴퓨터로 카피를 쓴답시고 룰루랄라...이럴 때 카피라이터는 말 그대로 꽃입니다. 장미나 튜울립같은 예쁜 꽃이죠.

아니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이 모두 자기에게 떠맡겨진 듯 고뇌하지만 그 고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고민고민... 이럴 때도 카피라이터는 여전히 "말 그대로 꽃"입니다. 단 그 꽃은 아까 거와 좀 생긴 게 달라 할미꽃이거나 호박꽃이죠.

그러나 "꽃다운 꽃"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그 꽃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향기가 납니다. 설령 AE가 광고전략 브리프를 잘못 써와도 그걸 가지고 AE에게 스트레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AE보고 철가방이라고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는 카피라이터가 있다면 그 말을 할 때 무척 똑똑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일단 C급이라고 보아도 틀림없습니다. AE가 좀 답답하거나 광고주가 유독 까다로우면 AE와 직접 광고주를 같이 가서 해보자고 하는 적극성과 용기도 가졌습니다. 광고주가 가려워 하는 게 무언지 그것을 AE에게만 꼬치꼬치 캐뭍지 않고 직접 영업현장도 나가보는 문제의식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가장 "꽃다운 꽃"의 모습을 드러낼 때는 매우 실질적입니다.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데 말로서가 아니라 카피의 실력으로 보여주는 바로 그 때입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꽃"의 C급 카피라이터처럼 단순 아이디어성 헤드라인을 많이 생각해본 노력의 산물인양 수많은 안들로 AE에게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AE의 선택만을 바라는 건 그렇지 않아도 골머리아픈 AE의 머리를 더 어지럽히게 하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꽃다운 꽃" 진정한 카피라이터들은 그런 아마튜어들이나 하는 C급의 촌티가 나지 않습니다.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어떨런지... 그렇게 내미는 한두개안의 카피속에는 "생각이 열리는, 문제가 풀리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습니다.

설령 깨끗한 종이에 컴퓨터로 말끔하게 타이핑된 게 아니라 이면지에 볼펜으로 적혀 있더라도 거기엔 얽힌 매듭을 푸는 진짜 아이디어가 강하게 배어 있습니다. 만일 AE가 그 보석을 이해하지 못할 때 "이건 이렇게 해야 되..."라고 하는 강한 주장 속에 믿음직하고 기분좋은 프로페셔널의 고집을 느낍니다. "그래, 바로 이거닷!" 그런 감탄사를 부를 때 AE는 한점지고 있던 9회말 투쓰리에 투런홈런을 날린 8번타자 덕으로 승리한 투수처럼 짜릿한 기쁨을 맛봅니다.

카피라이터를 이렇게 2개의 꽃으로 극단적으로 대비하여 보니 어떤 카피라이터가 "좋은 나라"인지 금방 이해가 됩니다. 정작 자신이 카피라이터라면 이 글을 읽고 기분나쁜 분도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건 "말 그대로 꽃"의 카피라이터가 우리 광고 현실 세계 속의 "Majority"는 사실입니다.

이건 통계치를 낼 순 없지만 아마도 맞을 겁니다. 원래 수능시험 성적 등 모든 통계치의 정상분포도를 보아도 C급은 A급보다 훨씬 대다수인 게 분명하듯이... 그러니 그런 광고업계 현실의 진실이 사실 하나도 이상할 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미스테리는 그런 카피라이터들이 자신들이 그렇게 C급처럼 하는 데 하나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으레 당연한 것으로 보는 거죠.

더 나아가 광고회사 내에서 그렇게 하는 게 어떤 관례처럼 되어가 그런 카피라이터의 C급 행태를 보고 회사에서 아무도 그걸 가지고 뭐라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할 때 자기네 실력이 모자란다고 외부의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를 건당 몇백만원씩 주고 이용하기도 하는 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은 양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카피라이터들은 자기가 나서서 그런 외부 카피라이터를 이용하자고 발벗고 나섭니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나 쪽팔림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더 이상한 건 그런 걸 당연한 것으로 보는 회사내의 일반적인 시각에 있습니다. 제작에서도 그렇고, 기획에서도 그렇고, 관리에서도 그렇고, 경영진도 그렇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카피라이터는 정말이지 광고회사의 "꽃"이 확실히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꽃"은 그런 꼴을 보지 못합니다. 그만큼 자기 기량도 있고, 노력도 하고, 욕심도 있습니다. 이런 "꽃다운 꽃"의 카피라이터가 현실적으로 몇%나 계실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런 카피라이터가 그리울 뿐입니다.

오늘 이상하게 카피라이터에 대한 글을 쓴답시고 카피라이터 성토를 하게 된 데 대하여 광고업계 카피라이터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제 얘기가 너무 이상적이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는 해야한다고 봅니다. "네? 벌써 그렇게 하고 계시다고요?" zzzzzzzzzzzzzzzzz


매사에 크리에이티브 해 지자! 케이시


211.217.17.82 육수경 (ssogaria@dreamwiz.com) 03/19[19:23]
저는 이분의 카피라이터를 보는 관점에 예전부터 거부감을 조금
느끼고 있었습니다만, 어쩌면 그건 제가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오늘 했고 그래서 이글을 올려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참고로 이글은 "박기철의 인생과 광고" 연재 중 일부입니다.
211.234.199.37 서민규 (hair22@netsgo.com) 03/26[19:56]
원칙적으로 공감함...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나서
이거다 싶은 것에 대해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 같은데
그렇지만 우리처럼 인간관계를 중요시 하는 사회에서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상적인 생각이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팀을 잘 설득하는 작업까지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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