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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03 (22:20:39)
우리나라 광고사 속에서 카피는 시대적인 변천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 알아보자. 우리나라 광고의 첫 출발은 외국과 비슷하게 역시 카피에서 시작되었다. 근대광고의 효시로 일컫는 '世昌洋行'의 한문으로 된 광고 카피가 우리나라의 첫 카피라 할 수 있겠다. 카피의 역사와 변천과정은 다각적인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한국광고의 시대적 구분에 따라 분석했다.


1. 1886년 ~ 1910년

1886년 우리나라 광고의 효시라 할 수 있는 世昌洋行의 '德商世昌洋行告白'이 카피의 효시다. 이때는 일러스트레이션이나 헤드라인 등 광고의 요소가 없고 '카피=광고'시대였다.
주로 정보를 알리는 뉴스형, 고지형, 지시형의 카피가 광고의 주조를 이루었다. 1909년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시애틀 박람회 유치광고에는 "이쪽을 날마다 자세히 보시오"라는 시리즈광고가 집행되기도 했다. 또한 '漢陽商會'의 '특별광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경품광고였다. 이때 광고의 특징은 광고물 속에 꼭 '廣告'라는 말을 삽입했다.


2. 1910년 ~ 1920년

일제의 무단정치가 극에 달한 시기로 한약 계열의 의약품과 서적 등이 주로 광고를 게재했다. 1917년平和堂 광고에는 속달우송제도를 이용한 판매방식이 선보였고, 오늘날 기획광고에 해당하는 광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1917년 2월 17일자 模範賣商會광고에는 광고문 현상모집 당첨자 발표가 있으며, 2월 18일자에는 平和堂의 소비자 증언식 광고도 보인다.
이와 같이 담배회사의 티저광고나 왕족인 李堈公妃가 胎養調經丸을 시복했다는 광고가 나올 만큼 방법은 다양해지고 발전했으나, 민간신문의 폐지 등으로 광고의 암흑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3. 1920년 ~ 1945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창간으로 광고가 빛을 보게 되는 시대다. 대중매체의 다양화로 광고의 발달이 눈부시게 이루어졌다. 뉴스형, 지시형, 호기심, 자극형의 헤드라인이 주류를 이뤘다. 구한말에 비해 헤드라인도 있고 카피 테크닉도 큰 성장을 보았다.
"여러분의 和信"(백화점), "하절쇠약에 百補丸" 등 제품명에 슬로건 형식의 카피도 선보였다. 조선, 동아 창간 후 처음으로 사진을 이용한 광고가 집행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養調經丸'은 제품사진을 이용했는데 사진 밑에는 "태양조경환 약갑모양 사진"이란 캡션까지 달았다. 그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캡션을 사용한 것이기도 했다.

또 이 시대에는 재미있고 크리에이티브한 카피도 많이 나왔는데 제일양복상회는 "만천하 시선의 초점은 동아일보, 양복 주문의 초점은 제일양복상회에 집중"이라 표현하고 그 이유를 서브 헤드라인의 형식으로 설명하는 등 창의성이 돋보인다.
또한 일러스트레이션과 짜임새 있는 레이아웃으로 주목을 끈 光新洋靴店 카피는 더욱 재미있다.
"아! 부럽도다. 시원한 淸風부난곳에, 산뜻한 洋靴신고, 活潑히 거러가난 저 - 靑年의 步調! 저 - 洋靴지은곳은 ?"지금 보면 유행가 가사처럼 느낄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띄어난 발상이었다. 또 世昌洋靴店광고에는 처음으로 서양인 모델 사진이 사용되었다.

그 외에 재미있는 카피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얼굴의 미를 더하면, 윤택을 더하는 가데이(カテイ)"이 가데이 비누광고에는 자매품도 함께 광고를 했다.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그러면 무엇인가, 滋養品이다. 기린맥주"
"품질로나, 가격으로나 花王비누" 花王비누는 직접적이고 세련되지 안았지만 소비자 이점을 전달하고 있다. 또한 레-토(レ-ト)白粉광고는 이 당시에 이미 정보제공형 광고를 하고 있었으며, 삭구(콘돔)광고의 카피를 보면 표현이 매우 적나라한 점이 눈에 띈다.

1920년대 초 朝鮮賣藥株式會社의 靈紳丸과 平和堂藥房의 滋養丸, 胎養調經丸의 광고는 요일별로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집행된 획기적이 시리즈 캠페인 광고였다.

"季節來! 家庭에-, 身邊에- 준비하시오." "영신환 한 개 심신이 상쾌" "곷노리, 산보에 잊지말고 가지십시오." "금일은 日曜. 꽃들은 한창, 어데를 가시던지 영신환 잊지마시오." "꽃 고움을 부러워 할 것 없습니다. 부인 영약 태양경조환. 잡수신 부인의 화려한 안색"

일반적으로 보아 1920년대의 한국광고는 일본광고에 비해 수준이 낮은 것이 눈에 띄인다. 1928년 동아일보에 게재된 '스모가치약'광고는 일본 최고의 카피라이터가 만든 광고로 강렬한 일러스트레이션과 적절한 카피, 대담한 여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 광고를 앞질렀다.

"담배 자시는 분의 치약 스모가 - 잠잣고 쓰면 잠잣고 치아가 희어집니다."
"연기를 마셔서 검게된 치아면 스모가로 대번에 還俗됩니다."
"항상 일치 안되는 것은 겸양의 미덕과 공고의 문구다. 그렇치만 항상 일치되는 것은 스모가의 품질과 그의 聲明이다."
"누가 닭을 잡는데 큰 칼을 쓰드냐? 누가 치아를 희게 하는데 스모가를 쓰지않드냐?"
카피 속에 타켓을 정확하게 집고 있으며 카피와 비주얼의 일치를 통해 광고효과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 이점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1930년대 유한양행의 광고는 최초의 기업광고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만천하 독자에게 고함" 이라는 헤드라인 밑에 혹자는 이것을 하라, 저것을 쓰라 하며, 혹자는 무슨 약을 쓰라고 까지 지명할 것입니다. ....중력 .... 우리 유한양행은 그 可信할 치료제를 의사에게 제공함에 상당한 노력을 한다고 자부합니다."

또한 1927년 유한양행의 "유한양행 마크에?"라는 광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티저 광고로 매우 좋은 광고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 무렵 극장들도 프로그램을 인쇄해서 관객유치 활동을 벌였다.


4. 1945년 ~ 1960년

우리나라 역사의 격동기로서 특히 6.25를 전후로 한 시기에는 모든 산업의 침체와 함께 광고도 침체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후반부터는 신문, 잡지, 라디오, TV등 이른바 4대 매체가 갖춰졌을 뿐 아니라, 광고표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이시기의 헤드라인은 지시형이 주종을 차지했고, 뉴스형, 호기심 자극형, 감정소구형이 나타났다. 주요 광고주를 보면 해태제과, 동아제약, OB맥주, 유한양행, 진로, 럭키가 광고의 선두주자였다. 그 시대의 주요 광고주의 카피를 보면

"미제와 꼭 같은" - 럭키치약(1955)
"살찌는 가을" - 영양보충에 해태 캬라멜 (1955)
"배가 아프고, 소화 안되며, 토사곽난, 술을 과음했을 때" - 생명수 (1955)
"언제든지 어디든지 호평" - 진로 소주 (1955)
단연 군소 비타민제를 제압한 왕좌. 비타나인 유한양행" (1955)

카피와 광고의 수준은 조악했으나 이 시기는 4대 매체가 등장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1956년 5월에 개국한 HLKZ-TV가 슬라이드 광고를 시작했다. 최초의 슬라이드 광고였던 골덴텍스의 카피를 보면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선물에는 장미표 모사와 골덴텍스 양복지가 제일입니다. 국산품 인기투표에서 빛나는 대통령상을 받고, 국산품 전시회에서 상고장관상을 받은 국산 최우량품. 장미표 모사와 골덴텍스 양복지는 부드럽고 색깔이 좋은 것이 그 특징이며, 외국산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장미표 모사와 골덴텍스 양복지를 잊지 마시고 선택하십시오."

카피의 수준은 자랑 일색이고 크리에이티브는 없으나 카피사적인 측면에서 기억되고 있는CM이다.
또한 1959년 4월, 진로 소주의 라디오 CM SONG 광고가 첫 등장을 했는데 오늘날까지 우리들이 흥얼거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얏야야 얏야야 차차차... 진로 진로 진로 ...
향기가 코끝에 풍기면 혀끝이 짜르르 하네.
술술 진로소주 한잔이 파라다이스. 가난한 사람들의 보너스."


5. 근대광고의 출발, 196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이 드디어 광고에 눈을 뜨게 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광고의 질도 카피의 크리에이티브도 전 시대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발전하게 되었다. 이른바 근대광고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60년대 광고 표현에 있어서 또 하나의 사건은 사진과 일러스트 및 사진식자의 출현으로 카피중심의 광고가 서서히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 결과 카피 발달의 주도적인 위치는 라디오가 담당하게 되었다. 유명인을 이용한 증언식, 정보를 전달하는 정보형, 자연스러운 대화형 등 형태 및 질적인 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되었다. 함흥 개장국의 카피를 보자.

"여름철의 건강 비결에 대해서 현대병원 김박사의 말씀은-
김박사 : 글쎄요. 저의 건강법이란 약도 아니고 주사도 아닙니다.


그저 개장국을 먹는 일이죠. 그 개장국은 충무로 2가에 있는 함흥개장국입니다. 헤헤...


Ann :여러분도 잊지 마시고 꼭 한번 들러보세요. 함흥 개장국."

제품의 장점을 대화체로 연출한 단학 포마드도 재미있다.
여 : 저 실례지만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시나요?
남 : 허어, 내년이 내 환갑이오.
여 : 그런데 머리가...
남 : 윤기가 있단 말이군. 네 단학 포마드를 쓰면 이렇게 됩니다. 바로 단학 포마드

이렇게 라디오 광고가 카피를 주도하다가 후반에 인쇄매체에 카피가 제자리를 찾게되었다. 소화제 훼스탈의 "마음놓고 잡수세요." 캠페인이나 유한양행의 "여러분의 유한양행은... 43년간 신용으로 살았습니다."등이 등장, 카피의 묘미를 만끽하게 하였다. 또한 잊을 수 없는 카피는 "It's the real thing"을 번역한 "산뜻한 그맛! 오직 그것뿐!"의 코카콜라 카피였다.


6. 다양한 카피 테크닉의 출현, 1970년대 이후

카피다운 카피가 쏟아져 나온 것은 역시 7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겠다. 광고대행사가 본격적으로 출현하고 거기서 양성된 전문 카피라이터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사원모집에 있어서도 "Ambition을 가진 젊은이를 구합니다."였고 주식모집에 있어서도 "여러분에 의해 성장한 기업이 여러분을 주주로 모시고 싶습니다"정도로 발전했다.

"찾는 분이 많을 줄이야 알았지만 이토록 많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며칠동안에 책방에 이 잡지가 떨어져 헛걸음하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이제 넉넉한 분량을 마련하여 새로 전국의 책방에 골고루 풀겠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의 장문의 카피는 절제된 표현과 설득력으로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CF카피로 주목 할만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농심라면일 것이다. 구봉서, 곽규석 콤비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는 오늘날 라면시장의 역전의 서막을 예고하는 최고의 카피였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정치, 경제의 급변으로 절약시대를 표방하는 카피가 많이 나왔다.
"같은 값이라면 1%가 이익입니다."
"116원의 기름으로 16Km를 달리는 트럭은 포터뿐입니다."

그런가 하면 Reason Why 카피가 등장, 강한 소구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썬퍼니처 장롱이 가장 잘 팔리는 3가지 뚜렷한 이유 "
"담배의 해독으로부터 남편을 구하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

또 임팩트형 카피도 성공을 거둔 시대였다.
"딱하다, 행주여"
"장농을 사실 땐 이불을 들고 나오세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해외여행을 떠나지 마십시오"
"이 타자기를 보기 전에는 메모리 타자기를 선택하지 마십시오."

이와 같이 시대가 발전하면서 카피도 라이프 스타일, 사회이슈 변화, 국제화 등에 영향으로 더욱 다양해지고 크리에이티브해지며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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